명사인터뷰

[Vol.36] “죽음의 원인 밝히는 일, 다양한 전공자 진출 가능”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

 

2013년 어느 날, 생후 27개월의 지향이가 혼수상태로 모 대학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지향이 엄마는 119 구조대원에게 ‘아이가 목욕탕에서 넘어졌다’고 말했다. 심장이 약해 미숙아로 태어난 지향이는 며칠 버티지 못한 채 숨졌다. 엄마는 아이를 화장했다. 슬프지만 평범한 사고사(死)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외인사’라고 적혀있어야 할 지향이의 사망진단서에는 ‘폐렴으로 인한 병사’라는 기록만 남아있었다. 알고 보니 지향이 엄마가 사망 원인을 숨기기 위해 작은 동네병원 의사에게 25만원을 주고 위조한 서류였다. 사인을 묻는 고모에게 지향이 엄마는 ‘냉장고 앞 식용유를 밟고 아이가 미끄러졌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향이를 16개월간 맡아 키웠던 지향이 고모는 인터넷 게시글과 방송 등을 통해 친모가 아이를 학대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법원은 시신도, 증거도 없는 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지향이 친모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사망 전 찍힌 지향이의 뇌 사진과 이를 본 법의학자들의 소견이 양형에 영향을 미쳤다. 사망 당시 70cm밖에 되지 않았던 지향이의 뇌에는 1m 이하 어린이가 넘어졌을 때 발생하기 힘든, 심각한 부종(경막하출혈)이 두 개나 존재했다. 외부의 강한 충격, 즉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의 법정증언이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 교수는 지난 15년간 2000여건의 시신을 부검한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다. 지난 9월 21일 추석연휴를 앞두고 찾은 유 교수의 연구실엔 서류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는 서류더미를 두고 “(지향이 사건처럼) 시신을 직접 부검하지 않아도 자문을 해달라는 공문들”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매주 월요일 오전 경찰 등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 3~4구의 사체를 부검한다. 유 교수는 이러한 부검이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행정 서비스 중 하나라고 말했다.

“부검의는 주로 원인불명의 사체를 부검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타살로 인한 사체만 부검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타살이 아닌) 죽음의 원인을 분석하는 행위가 왜 필요한지 예를 들어보죠. 아이를 잃은 부모는 자녀가 왜 죽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죽은 아이의 형제에게도 가족력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국민의 건강과 알권리를 위해 국가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유 교수는 또 “많은 분들이 생각하듯 부검의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사건현장에 직접 가서 사체를 들여다보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의학자라고 해서 반드시 나처럼 의학을 전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법의학은 범위가 굉장히 넓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침의 DNA를 분석해 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법의유전학의 경우 생명과학부 출신의 교수님이 계시고요. 화학과나 약학과 출신이 검체(사체) 내에 존재하는 약물을 분석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화재 현장을 감식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에는 재료공학과 출신이 진출하기도 하죠. 교통사고 당시 차내의 기록을 분석하는 일은 공학전공자도 할 수 있습니다.”

 

유 교수는 이처럼 법의학 분야가 상당히 전도유망하고 수요가 많음에도 인재 풀이 좁은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최근 수도권의 모 대학은 법의학자 교수 자리가 비어서 몇 번씩 채용공고를 올렸지만 지원자가 없어 교수를 뽑지 못했어요. 국과수에서는 5급 공무원으로 시작하는 법의관 정원을 늘렸다가도 채용된 사람들이 자꾸 그만두고 나가는 통에 애를 먹고 있고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체를 봐야하는 업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공포,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유 교수는 사체를 보는 일이 불길하다는 편견 때문에 본인이 당했던 웃지 못 할 일화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제 아내가 임신했을 때 일이예요. 집에 찾아오신 장모님이 퇴근해 들어오는 제게 굵은 소금을 뿌린 적이 있어요. 장모님 나름대로는 태어날 손주를 위해 저와 함께 따라왔을 악귀를 쫓아내는 퇴마 의식을 행하셨던 것 같습니다.(웃음)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맡았던 군 복무 기간엔 부검 어시스턴트 일을 하던 준위분께서 ‘꿈에 귀신이 보인다’며 3일 만에 일을 그만두신 적도 있었죠.”

최근 법의학계에 고무적인 점은 여성 법의관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과수나 서울대 교수들만 해도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어렵고 힘든 일처럼 보이지만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부검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상이라 봅니다. 사실 부검은 반드시 햇빛이 비칠 때만 이뤄지기 때문에 부검 감정서만 빨리 쓸 수 있다면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Work and Life Balance)’도 지킬 수 있는 직업이에요. 일종의 사명감, 도전의식이 있다면 충분히 할 만합니다.”

유 교수는 이 직업을 택할 때만 해도 고민이 많았지만 선택한 후에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저는 학창시절 무협지와 축구를 좋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집안에 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 권유에 따라 의학대학에 진학했고요. 하지만 법의학은 제가 직접 고민 끝에 선택한 진로예요. 제가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본과 4학년 때입니다. 당시 이윤성 서울대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법의학 수업을 듣고 감명 받은 거죠. 수업이 끝나고 이 교수님께 법의학 분야의 미래를 물었더니 우스갯소리로 ‘이보다 더 나빠질 순 없다’는 말을 하셨어요. 워낙 전공하려는 사람들이 없어서 하는 얘기셨죠. 그런 조언을 듣고 나니 오히려 제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묘한 사명감이 생겼어요.”

자유학기제를 통해 다양한 직업체험을 하게 될 학생들에게 유 교수는 의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공자들이 도전할 수 있는 법의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했다.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건강한 우리 사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두려움과 선입견을 극복할 수 있다면 누구든 도전할 수 있습니다.”

유 교수는 본인의 감정(鑑定: 사물의 특성이나 참과 거짓, 좋고 나쁨을 분별하여 판정함)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생길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정부 한 아파트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해서 여성 한 명이 사망했어요. 고아인 이 여성은 미혼모였는데 5살짜리 자신의 아이를 살리느라 전신화상을 입었죠. 사건을 담당한 형사가 울면서 찾아왔어요. 천애고아가 된 아이에게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데 보험금을 받으려면 사인이 적힌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면서요. 사망한 여성의 유가족이라곤 무슨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른 채 웃고 있는 어린아이뿐이었죠. 저도 같이 울었어요. 화상이라 처참한 시신이었지만 더 정성 들여 꼼꼼히 봉합했어요.”

유 교수는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부검실에서 만난 이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사인을 밝히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법의학 저변을 넓히기 위해 저서도 출판할 계획이다. “부검을 시작할 때 저만의 원칙이 있어요. 마음속으로 ‘꼭 사인을 밝혀드리겠다’며 검체에 말을 걸죠. 제 스승님인 이윤성 교수님은 오히려 ‘죽은 자가 말을 건다’고도 하셨어요. 앞으로도 저는 묵묵히 제 길을 갈 겁니다. 제가 생을 다 마치고 난 뒤에 신께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죠.”

 

◆유성호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인턴과 전공의를 거치면서 병리전문의를 취득, 동대학원에서 법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국립보건원의 NIAAA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쳤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서 매주 월요일 부검을 하고 있다.

[글쓴이] 지민 객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