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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6] 20년 전 ‘노동자 없는 경제’는 이미 예견됐다


노동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著, 민음사, 1996년)

 

국가경제는 전체적으로 성장해 생산이 늘어나는 데도,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 현상을 말하는 ‘고용 없는 성장’. 실업난은 지속되고 있는데, 한쪽에선 계속 성장하고 있답니다. 오늘의 이 현실을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최근의 이슈만은 아니죠. ‘오래된 미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3년 전, 1995년에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원제:THE END OF WORK)》에서 이미 ‘노동자 없는 경제’를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96년에 번역돼 소개됐어요.

제레미 리프킨(73)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와 사회,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측해 온 경제·사회 사상가입니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와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 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 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리프킨은 《엔트로피》(1980년), 《소유의 종말》(2000년), 《공감의 시대》(2010년), 《제3차 산업혁명》(2011년), 《한계비용 제로사회》(2014년) 등의 저서로 유명합니다.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피곤을 모르는 기계들이 인간의 노동을 빼앗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는 일자리도 있긴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져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436쪽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두 개의 종족으로 구분될 거라고도 했습니다. 첨단 기술 세계를 지배하는 소수의 정보 엘리트 집단과 아무런 희망도 없는 거대한 영구 실업자 집단, 이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집단이 지구촌에 공존한다는 거죠.

암울한 예측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 발전의 이 위험한 문제를 넘어서는 ‘후기 시장 시대’를 열어 가는 새로운 대안과 접근 방법도 제시합니다. 바로 ‘제3부문(the third sector)’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생산성에만 기초하지 않은 이 ‘사회적 경제’는 친밀감과 형제애적 연대, 봉사 정신과 같은 인간 정신을 재발견하게 할 것이다.” -437쪽

제2차 산업혁명까지는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가 컸습니다. 고된 육체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죠. 반면에 제3차 산업혁명 특히 ‘인공 지능’의 발전과 관련된 미래 전망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섭니다. 육체노동이 아닌 정신노동, ‘정신세계’에 대한 대체 가능성이 고유의 인간 가치까지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바둑 대국에서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충격의 실체는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리프킨이 말하는 ‘노동 없는 세계’는 과학자, 엔지니어, 기업주들에게는 고되고 정신없는 반복적인 작업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는 역사상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대량 실업, 전 세계적인 빈곤, 사회적 불안과 격변이라는 우울한 미래로 비칠 수도 있다고 리프킨은 분석합니다.

일치하는 의견도 있어요. 제조업과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 말이죠. 우리는 오늘, 이 사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도 “생산의 핵심요소로서의 노동의 소멸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인 미해결 과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도 있습니다.

기술 발전과 기술 혁신은 그동안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견해도 많았습니다. ‘기술 확산’이론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생산성 향상의 혜택은 궁극적으로 보다 값싼 재화, 보다 큰 구매력, 보다 많은 일자리의 형태로 노동자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개념입니다.

기술 역할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이 있죠. 기업가들은 새로운 기술을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보다 많은 이윤과 더욱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봤어요. 대중들은 어느 날 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보다 많은 여가생활을 위해 인간을 해방시켜 준다는 또 다른 이상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첨단 기술 정보시대가 오면, 끝없는 생산과 소비, 노동이 계속 강조되는 ‘기술 확산’이라는 가정이 위험스럽게 이어질까요? 아니면, 첨단 기술 혁명이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궁극적으로 인류를 해방해 오랜 숙원인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유토피아의 꿈을 실현시켜 줄까요?

리프킨의 전망은 이렇습니다. “미래에는 직장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에 자유 시간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자유 시간이 강제된 파트타임 노동, 일시 해고, 실업의 결과로서의 강압적이고 타율적인 것일지 또는 생산성 향상, 노동 시간 단축, 소득 향상으로 인한 레저일 것인지의 여부는 정치적 영역에서 결정될 것이다.” -324쪽

‘노동의 종말’은 인간 정신의 재탄생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제3부문, 사회적 경제가 그것이죠. “사회적 경제는 기계가 완전히 침투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제3차 산업혁명으로 대체된 노동자들이 공식 시장에서 자신들의 노동력의 가치가 무용하게 된 후 생활의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게 될 피난처가 될 것이다.” -374쪽

제3부문은 이미 사회에 반영돼 있습니다. 공동체 활동은 사회 서비스, 건강, 교육과 연구, 예술, 종교, 변호 활동 등 다양하게 수행이 되고 있죠. 고령자와 장애자, 불우 아동, 무주택자와 빈민을 지원하는 자원봉사활동 등 보살핌의 영역이 제3부문에 해당합니다.

제3부문 비전은 20세기 산업적 사고를 지배했던 물질주의에 매우 필요한 해독제를 제공한다. 타인에 대한 서비스로 참가의 동기 부여가 이뤄지고 일자리 보장은 인간관계 및 공동체 의식의 강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323쪽

 

리프킨의 최근 견해는 어떨까요. 지난해 9월 한 중앙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2060년에 당신의 증손주에게 ‘증조할아버지는 매일 트럭을 운전해서 20㎞를 오갔단다’라거나 ‘증조할머니는 물건을 비닐 백이나 종이상자에 넣는 일을 했단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믿을 수 없어요. 왜 그런 일을 했어요?’라고 되물을 것이다. 그 시대가 유토피아가 될 거란 얘기는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이다. 인간의 여정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더 창의적인 일을 위해 진보할 것이다.”

[글쓴이] 김봉억 에디터